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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블레이드 러너 2049’ 또 한 번 전설은 쓰여질까

[푸드경제TV 정시우 저널니스트] 저주받은 걸작. 개봉 당시 매몰찬 혹평과 함께 졸작 취급을 당했던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1982년)는 그러나 시간이 쌓이면서 정반대의 지점으로 착지, ‘걸작’이란 칭호까지 부여받았다. 영화 곳곳에 깔린 철학적 담론의 풍성함이 시간을 견뎌 발화한 결과였다.

개봉판에 불만이 컸던(당시 제작사는 리들리 스콧의 뜻과 달리, 주인공의 내레이션을 첨부하고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꿔 개봉시켰다) 리들리 스콧은 이후 무려 다섯 가지 판본을 공개했는데, 그럴수록 영화의 가치는 상승했다. 주인공인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의 정체를 둘러싼 궁금증도 덩달아 커졌다. ‘그래서 릭 데커드는 인간인가, 리플리컨트(Replicant 복제 인간)인가!’

창조주 리들리 스콧은 끊이지 않는 팬들의 이 질문에 더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직접 연출하지는 않았지만(대신 제작을 충괄), 할리우드에서 가장 촉망받고 있는 후배 드니 빌뇌브에게 메가폰을 넘기는 방법으로 릭 데커드의 후일담을 들려주려 한다. 전작 ‘그을린 사랑’(2011) ‘시카리오’(2015) ‘컨택트’(2017) 등을 통해 인간 본성에 관심을 표해 온 드니 빌뇌브만 한 적임자는 사실 없었으리라.

2019년, 릭 데커드가 사라졌다. 30년이 지난 2049년. 신형 리플리컨트이자 구(舊)모델 리플리컨트의 잔재를 처리하는 ‘블레이드 러너’인 K(라이언 고슬링)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30년 전 죽은 여자 리플리컨트의 유골을 발견한다. 놀라운 건 유골에서 출산의 흔적이 나온 것. ‘리플리컨트가 아이를 낳는 게 가능한가!’ 이는 K의 믿음을 흔든다. 관련된 과거를 추적해가던 K는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되고,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릭 데커드를 찾아 나선다. 리플리컨트를 창조하는 월레스 기업의 총수 니안더 월레스(자레드 레토)는 그러한 K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한다.

원작의 열혈 팬으로 알려진 드니 빌뇌브에게 35년간 풀리지 않은 릭 데커드의 정체성은 후속편을 만드는데 중요한 키워드였을 것이다. 그는 릭 데커드의 존재를 파고들어 가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주인공 K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진다. 과거의 궁금증을 기반으로 또 하나의 호기심을 더한 것이다.

전작에서처럼 이번에도 ‘기억’은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런 면에서 호출하게 되는 또 한 명의 원작 캐릭터는 숀 영이 연기한 레이첼이다. 레이철은 다른 리플리컨트와 달리 자신이 진짜 인간이라 믿었던 존재다.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유년의 기억이 결국 조작이었음을 알았을 때, 그녀의 동공은 흔들렸다. K는 레이첼과는 반대의 방향에서 흔들린다. 조작이라 믿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르는 상황 앞에서 K는 실존적 고민에 빠진다.

영화가 특별해지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삶에 딱히 큰 불만이 없었던 K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동시에 뭔지 모를 두근거림을 품는다. 목적에 의해 생산된 게 아니라, 사랑에 의해 탄생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 앞에서 K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해 보이지만, 동시에 들떠 보인다. 복제가 원본을 대체해버린,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세계에서 여전히 존재들은 ‘인간적인/인간이고 싶은 욕구’ 앞에서 서성인다. 원작이 지녔던 묵직한 물음인 ‘인간이 무엇인가’는 같고도 다르게 이어진다. ‘그래서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건 압도적인 시각효과다. 장면 하나하나에서 놀라운 기품과 세공술을 보여주는 영화는 그래서 뭔가 ‘엄청나다’라는 감흥을 내내 투척한다. 장면이 곧 미술품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만 이 작품이 전작처럼 시간을 견뎌 ‘걸작’으로 남을까에 대해서는 조금 유보적인 입장이다. 전작의 질문들을 잘 계승하고 있고 시각적으로는 진일보 한 건 분명하지만, 전작과 차별화되는 그만의 사유의 폭을 지녔는가는 크게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해리슨 포드는 물론 숀 영까지 불러 세운 영화를 원작 팬이라면 안 볼 이유가 없다. 라이언 고슬링의 팬이라면 더더욱.



정시우 저널니스트 siwoorai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