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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의 영감대] BIFF 찾은 두 정치인…문재인과 서병수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주역들과 문재인 대통령(사진=청와대 제공)

[푸드경제TV 정시우 칼럼니스트] 불청객? 서병수 부산시장의 등장과 함께 분위기가 일순 싸늘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병수 시장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지난 12일,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레드카펫을 밟으며 서병수 시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2014년 ‘다이빙벨’ 검열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BIFF 파행의 원흉으로 꼽히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다이빙벨’ 논란 이후 BIFF는 매순 간 ‘너덜너덜’ 이었다. 자율성엔 심각한 빗금이 갔고,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검찰 고발을 당했다. 각 영화인단체는 영화제 보이콧을 두고 첨예하게 갈렸다. 올해엔 조직위원회 내홍으로 또 한 번 진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당사자인 서병수 시장은 사과 한마디 없이 버티는 중이다.

서병수 시장이라고 해서 자신이 영화제에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임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레드카펫에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는 여유도 부렸다. 팔을 쭉 뻗어 관객(?)과 하이파이브 하는 퍼포먼스에선, 여러모로 대단하다 싶었다.

그러니까, 이건 ‘정치 쇼’다. 재선 도전을 꿈꾸는 한 인간의 정치적 행보다. 지금의 BIFF 사태를 아는 사람들 입장에서 서병수 시장의 레드카펫 등장은 영화인들의 사과 요구를 완벽하게 무시하는 처사다. 하지만 이에 대한 내막을 잘 모르는 관객 입장이라면. 그렇다면 다르다. ‘영화인 표’가 아닌, ‘부산시민의 표’가 먼저인 서병수 시장에게 레드카펫을 밟은 몇 초간의 따가운 눈초리는 긴 정치 인생에 있어 그리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서 그는 원하는 걸 얻은 것 같다. 개막식 참여 후 서병수 시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시민들의 환대를 받는 사진을 내걸었다. 사진만 보면 흡사 BIFF의 주역 같다.

이날 서병수 시장의 행보를 바라보는 영화인들의 마음은 저마다 복잡했을 것이다. 지난해, ‘영화제 보이콧과 정상화’ 방안을 놓고 의견이 갈렸던 영화계다. 영화제를 한 해 못하더라도 문제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영화인들 입장에선 특히 아쉬움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앙금을 확실히 씻지 않고 영화제를 강행한 것이 지금의 서병수 시장에게 여러 빌미를 제공했다는 의견이 들린다.

사진=서병수 시장 SNS 캡처
사진=서병수 시장 SNS 캡처
틀린 말은 아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잘못된 것과 완벽하게 작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한 예들은 세계적인 영화제들이 이미 보여줘 왔다. 5월 혁명이 벌어지고 있던 1968년 프랑스 칸에선, 관료체제의 모순적 행태에 반발한 젊은 감독들의 반란으로 칸국제영화제 상영이 중단됐다. 루이 말, 로만 폴란스키, 장 뤽 고다르 감독 등이 앞장섰다. 이들이 주장했던 반자본주의와 진보적인 영화 정신은 다음 해 ‘감독주간’ 창설로 이어졌다. 비평가들 역시 같은 취지로 ‘비평가주간’을 만들었다. ‘감독주간’과 ‘비평가주간’은 오늘날 칸국제영화제가 예술적 본질을 잃지 않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베를린 영화제도 1970년에 비슷한 사태를 겪었다. 심사위원장이 베트남 반전을 그린 영화 ‘O.K’를 ‘반미 영화’라는 이유로 상영중지를 요청한 것이 화근이었다. 표현의 자유가 정치적 이유로 차단당할 상황에 놓이자, 영화인들이 농성에 들어갔다. 그 사태의 교훈을 새겨 만든 섹션이 ‘영포럼’이다.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영화들이 이 섹션을 통해 관객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있다.

영화는 당대를 반영하는 매체다. 그 파급력이 큰 매체라는 점에서 권력의 레이더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영화다. 그래서 더 그 자율성을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 또 영화다. 하지만 지금의 BIFF는 그 부분에서 심각한 치명상을 입었고, 지난해 그 치명상을 제대로 봉합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서병수 시장의 거칠 것 없는 이번 행보는 또 한 번 영화인들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정치인이 있다. 여러모로 침체된 이번 BIFF에 나타난 생각지도 않은 변수.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오전 부산 해운대 롯데시네마 센텀시티에서 열린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시사회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의 첫 BIFF 참석으로, 예정에 없던 행보였다. 그는 분명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지만, 그 누구보다 환영받았다. 왜 많은 이들이 문 대통의 이번 방문에서 BIFF의 희망을 말할까.

(사진=청와대 제공)
(사진=청와대 제공)
이날 문 대통령은 “우리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문화예술 행사 가운데 우리 부산영화제처럼 성공을 거둔 그런 행사 없었다. 우리 부산을 영화도시로 만들어줬는데, 근래에 와서 여러 가지 정치적인 영향 탓에 부산국제영화제가 많이 위축됐다고 해서 아주 가슴이 아팠다”며 “부산영화제가 다시 과거의 위상을 되찾고, 더 권위 있는 국제영화제로 발전해나가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더불어 “우리 정부에서는 다시 부산국제영화제를 과거의 위상으로 되살리겠다는 생각이다. 초기처럼 정부도, 시도 지원하되 운영은 영화인에게 맡기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살리면 된다”고 강조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예술 정책의 기본이자,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해 온 말이다. 의견을 피력하는 것과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부산으로 달려와 상처 입은 BIFF를 향해 남긴 말들은 그래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제 영화인들이 의견을 모아 다시 적극적으로 나설 차례다. 풀지 못한 숙제를 제대로 풀어야 할 때다. 이번 영화제를 끝으로 사퇴하는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의 후임 물색부터, 보이콧을 여전히 풀지 않은 단체들과의 이견 조율 등 과제가 산더미다. 비 온 뒤 땅이 굳을 것인가, 진흙탕이 될 것인가. BIFF가 출항을 알린 1996년 남포동 시절의 정신을 떠올릴 때다.



정시우 칼럼니트스 siwoorai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