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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인문학] 인간은 왜 먹이가 아닌 문화를 먹는가

미각의 지배, 저자 존 앨런

'인간이 먹는다'에 관한 질문들

사람이 아닌 동물은 ‘먹이’를 먹는다.

사람은 ‘먹이’라는 단어 대신 ‘음식(飮食)을 먹는다’고 표현한다.

모든 동물은 생존을 위해 먹어야 하므로 자연선택에 따라 음식을 구하고 소비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행동 메커니즘이 발달했다. 또 일부 인지 능력이 발달한 동물은 먹는 것과 관련된 활동을 즐거운 일로 여기기도 한다.

이런 동기, 쾌락, 보상의 기초적 인지 메커니즘은 어떤 동물이든 가지고 있지만 사람은 여기에서 한 발 나아가 다양한 ‘문화적’ 맥락에서 식이행동을 발달시켜왔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신경문화인류학 교수인 존 앨런은 음식 섭취와 소화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인간의 식이행동에 대해서 연구해왔다. 그 연구결과를 집대성해 '미각의 지배'를 출간했다.

미각과 식이행동에 대한 인지심리학∙문화인류학적 고찰

존 앨런은 '미각의 지배'에서 “왜 사람들은 바삭한 음식에 끌리는가?”, “인간은 어떻게 초잡식종이 되었는가?”, “왜 특정 문화권에서는 혐오 음식이나 선호 음식이 따로 있는가?”, “왜 사람들은 복잡한 조리법을 높이 평가하는가?” 등의 질문에 답 하면서 인간이 음식을 먹는 방식과 음식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 인류를 다른 동물과 다르게 진화시켰다고 말한다.

특히 인지심리학, 현대생물학, 뇌과학, 문화인류학 그리고 음식의 역사와 영양학 전반에 걸쳐 ‘먹는 자’와 ‘먹는 것’에 관한 새롭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득 담았다. 인간의 삶과 음식은 생리적일 뿐 아니라 문화적인 현상임을 알려준다.

문화적 미각을 지닌 인간.

우리가 음식에 대해 가지는 인지 과정은 매우 정신적이고 경험적인 것이다. 음식은 언어와 함께 인간 역사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미각의 지배'는 잡식, 조리, 경험, 금기, 비축 등 인간의 식생활 속의 다양한 특이 행동을 분석하면서 우리의 혀가 인류의 역사와 진화사를 이끌어왔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왜 사람들은 바삭한 음식에 끌리는가?

'미각의 지배'는 “왜 사람들은 바삭한 음식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특별히 ‘바삭한 음식’에 집중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류가 바삭하게 튀긴 음식에 열광하는 것은 견고한 문화적 장벽을 넘어 대륙을 횡단한다.

예를 들면, 문화적 배타성이 강한 일본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음식을 받아들여 덴푸라를 독일의 슈니츨을 받아들여 돈가스를 고안했다.

문화적으로 배타적인 곳에서도 바삭한 음식을 받아들였다면 이는 ‘문화적 유입’이라는 수동적 측면보다는 전 인류가 ‘생득적’으로 바삭한 음식에 대한 본능이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앨런 교수는 인류가 바삭한 음식을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된 근원을 따져 음식과 인류 진화에 대한 해석을 유도한다.

'미각의 지배'에서는 곤충과 과일, 또는 과일이 없을 때 대체 식품인 아삭한 채소 등을 통해 바삭한 음식에 대한 선호가 생겼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거기에 인간이 불을 발명한 후 기존에는 먹지 못했던 동식물까지 먹게 되면서 오랜 시간동안 바삭한, 혹은 아삭한 음식을 먹어온 생득적 선호가 튀기거나 구운 음식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으리라 짐작한다.

이런 관점은 다른 동물에 비해 양질의 영양소를 섭취해왔기 때문에 인간이 생태계의 가장 지배적 위치로 진화한 것이라고 보는 기존의 보편적 연구 관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패스트 푸드와 같이 고칼로리에 영양적으로 불량한 음식을 즐기는 현대인의 식습관이 이런 관점을 반증한다.

많은 학자들이 음식 문화가 인간의 본성이나 문명에 미친 영향에 대해 그저 ‘더 좋은 영양소를 섭취해왔기 때문에’ 정도로 간과해온 것을 존 앨런은 인간의 미각이 가지는 주관적이고 미시적인 역사를 끄집어내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관점은 복잡한 역사의 산물로 인지발달사, 진화사, 문화사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역사와 집안의 역사, 공동체의 역사까지 반영하기 때문이다. 미시·거시의 역사 속에서 인간이 왜 별것을 다 먹는 초잡식동물이 됐는지. 프랑스의 젊은이는 대낮에도 코스 요리를 시켜먹을 정도로 음식에 대한 집착이 강한 반면 왜 미국의 나이 지긋한 노인들은 KFC 치킨으로 식사를 때우는 일이 잦은지. 요리는 주로 여자의 업무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세계적인 셰프는 대부분 남자인지 등에 관해 흥미롭게 해석해나간다.

당신의 저녁 식탁이 미래의 인류를 말한다

“역사상 모든 시대의 모든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이 식사의 즐거움을 느꼈다. 식사의 즐거움은 다른 모든 쾌락의 일부가 될 수 있고 모든 쾌락 중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며, 지인들이 다 죽고 혼자 여생을 보내는 사람을 위로해준다.”

프랑스의 음식철학을 대표하는 저술가인 장 앙텔므 브리야사바랭이 자신의 책 '맛의 생리학'에서 언급한 경구다.

이는 음식과 식사의 보편적인 중요성을 나타낸다.

어떤 방식으로 왜 먹는지 정확하게 가르침을 받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숨을 쉬는 방법처럼 자연스럽게 음식과 식사에 관련된 지식을 터득해나간다. 이는 마치 언어와도 비슷하지만, 언어가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시험당하는 외부적인 행동이라는 점에서 앨런 교수는 음식이야말로 내적 언어, 즉 ‘마음’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상대방 행동의 표상을 보고 표의를 읽어낸다.

타인의 마음 상태와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누구나 상대의 마음을 읽는 ‘마음 이론’을 내적으로 발전시킨다. '미각의 지배'는 사람들이 음식을 생각하는 방식 역시도 마음 이론과 같다고 가정한다. 각자의 머릿속에 있는 암묵적인 ‘음식 이론’을 통해서 인간이 음식을 생각하는 방식을 규명하는 것이다. 음식의 맛, 냄새, 식감, 소리는 동시에 결합되어 먹는 경험을 형성하는데, 여기서 경험의 깊이와 의미는 기억과 동기, 또 새로운 음식에 대한 두려움이나 익숙한 음식에 대한 식상함 등 여러 다른 인지 과정의 영향을 받는다. 야구장에서 먹는 핫도그와 취업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사먹는 핫도그의 맛이 다른 것처럼 이 과정은 철저히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브리야사바랭은 현대를 사는 모든 사람은 식사의 기술과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다고 했다. '미각의 지배'는 이것이 역사 속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의 진화와 인류 문화의 산물로 우리는 야채, 고기, 곡식, 해물, 견과류 등 온갖 음식을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초잡식종이 되었다.

'미각의 지배'을 읽은 후, 우리 모두는 저녁 식탁을 훌륭히 계획하고 준비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인간의 미각이 지배해온 역사에 대한 최선의 행동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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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전문기자/문화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