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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인문학] 가식의 식탁에서 허영을 먹는 음식문화

미식 쇼쇼쇼, 저자 스티븐 풀

음식은 중요하다.

음식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음식을 즐기는가는 자신의 계급, 문화, 취향, 출신 지역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라고 주장한 까닭이다.

그렇기에 음식은 또한 자신의 계급과 문화, 취향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서양의 포크와 나이프를 얼마나 잘 다루는가로 자신의 문화 수준을 드러냈다면, 지금 서양에서는 아시아의 음식을 얼마나 즐기는가로 자신의 세련되고 포용력 있는 취향을 과시한다.

요리는 중요하다.

야생의 식재료를 사람이 먹을 만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던 조리는, 이제 ‘섹시한’ 남성들의 필수 기능이자 미식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섬세한 입맛을 시험하는 장이 되었다. 또한 요리는 화려하다. 칼과 불이 춤추는 주방만큼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또 어디서 찾아보겠는가.

그래서 먹방과 쿡방이 대세가 된 지금,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이런 현상에 염증을 느낀다. 생존과 나눔보다는 과시와 구별 짓기의 수단이 된 음식, “당신이 먹은 음식이 곧 당신은 아니다!”라고.

스티븐 풀은 음식에 지나칠 정도로 몰두한 지금과 같은 상황을 상당히 날카롭고 풍자적인 언어로 거침없이 비판한다. 제3세계 농민들의 생존이나 연대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그저 자신의 건강에만 신경 쓰거나 혹은 정치적 올바름을 드러내는 간편한 기표가 된 로컬푸드와 유기농을 비판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다.

미식의 시대에 염증을 느끼다

이제 매일 아침 가십기사에서 ‘셰프’(요리사라고 하면 절대 안 된다)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어떤 음식평론가, 어떤 셰프가 최근에 뜨는 셰프를 ‘디스’했다거나, ‘허세’를 지적했다거나, 혹은 건강하지 않은 음식이라고 폄하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사실 그보다 더 많이 나오는 기사는 맛집, 새로운 요리, 요리 비법 등에 관한 것이다.

셰프들은 연예인들과 함께 요리를 하고, 리얼리티 쿡킹쇼를 보여 주고, 심지어는 일상을 보여 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까지 등장한다. 슬슬 이제 먹방과 쿡방이, 텔레비전을 틀면 어디든 나오는 셰프가 지겹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음식이 대세다. '미식 쇼쇼쇼 ― 가식의 식탁에서 허영을 먹는 음식문화 파헤치기'에 나오는 영국의 사례들을 보면, 대한민국의 먹방과 쿡방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러한 요리는 어떠한가?

마늘로 조리한 새하얀 밤, 사과 맛이 나는 감자 면과 가늘고 길쭉한 송어, 게살 크로켓, 달걀 노른자를 ‘소금에 절여 가늘게 채 썰어 뿌리고’ 토치로 겉면을 익힌 숭어 요리, ‘건초 위에서 훈제한’ 씨앗 한 움큼, 돌 위에 버섯과 함께 놓은(다소 외로운) 새우, 소금에 절인 대구 한 조각(포르투갈 요리인 바칼랴우 버전), 적양배추 초콜릿 소스를 곁들인 희귀한 비둘기 고기 두 점, 한가운데 삶은 달걀 슬라이스가 (놀랍게도!) 숨겨진 아주 작은 치킨 파르페 샌드위치를 맛보는 경험도 했다. 아이스 오이와 쫄깃쫄깃한 밀감 아이스크림, 버섯향이 나는 초콜릿 트러플 …… 식사 말미에는 웨이터가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피어나는, 설탕을 뿌린 아몬드 몇 개를 가지고 온다. ‘즉시 드시길 권합니다. 얼린 상태거든요.’ …… 액화 질소로 냉각해 만든 아이스크림이라는 그것은 매우…… 기름지다.

그렇다. 저자는 음식에 지나칠 정도로 몰두해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상당히 날카롭고 풍자적인 언어로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다.

흥분한 개처럼 군침을 흘리고 과도한 음식을 소화하느라 끈적끈적 느리게 흐르는 혈액 때문에 두뇌가 굼떠지지만 않았다면 자신의 시간과 창의적인 에너지를 분명 다른 곳에 쓸 수 있을 텐데도, 그저 음식에 심취해 음식에 관해 열변을 토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정치인·종교인보다 요리사를 믿는 시대

스티븐 풀이 단순히 사람들이 음식에 몰두해 있는 상태, 셰프가 스타가 되는 세태만을 꼬집는 것이 아니다.

그는 ‘섹스’ ‘언어’ ‘진정성’ ‘자연’ ‘유행’ ‘가상’ ‘영혼’ 등의 키워드 등을 통해 자신의 관심사인 언어와 문화를 잘 엮어 가며 그 ‘문화’ 속에 감추어진 심리, 역사, 정치, 경제 등의 문제를 들추어내고 있다.

유명 요리사들은 자신이 만든 기이한 민스 파이(헤스턴 블루먼솔)나 청동틀로 만든 파스타(제이미 올리버)에 상표를 붙여 슈퍼마켓에서 팔아 댄다. 그리고 시카고에서 코펜하겐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비싼 레스토랑의 요리사들은 진지한 잡지와 신문의 인물 섹션에서 마치 성인(聖人)이라도 되는 듯 소개된다. 음식 축제는 요리하는 모습을 전율 넘치는 라이브 공연으로 보여 주는 새로운 록 페스티벌이다.

음식과 요리가 사회 전반에 어머어마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 미식의 시대를, 저자는 이렇게 꼬집는다.

‘당신의 건강은 정말로 당신의 손에, 당신의 부엌에 달렸다.’ 당신이 아프면, 틀림없이 당신 잘못이라는 뜻이다.

현대의 음식 관련 책은 요리에 대한 열망을 채워 주기보다는 형이상학적이거나 라이프 스타일 관련한 열망을 충족하려 존재하고, 유명 요리사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현대 문화에서 음식에 관한 화려한 미사여구와 이미지는 영양이나 환경에 대한 합당한 관심사와 단절된 채 영성주의의 대용품이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정치인이나 종교인을 믿지 않는다. 이제 요리사들이 이 두 역할을 해 주리라 기대한다.

스티븐 풀은 제3세계 농민들의 생존이나 연대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그저 자신의 건강에만 신경 쓰거나 혹은 정치적 올바름을 드러내는 간편한 기표가 된 로컬푸드와 유기농을 비판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다.

그가 음식에 관심을 갖는 모든 사람을, 모든 요리 행위를, 음식의 중요성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스티븐 풀이 가족을 위해 정성스레 차린 따뜻한 밥상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매일매일 밥상을 차리는 수고에서 벗어나(비록 돈을 내긴 하지만) 전문 요리사가 차려 준 요리를 맛보는 외식의 기쁨을 앗아 가려는 것은 아니다.

그가 비판하는 대상은 음식의 준비와 소비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을 일컫는 푸디즘과 그 신봉자들인 푸디스트이다. 이들은 음식을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 그릇된 우월감을 키우고 뒤틀린 욕망을 부추긴다. 스티븐 풀은 이러한 푸디스트들의 행적을 집요하게 쫓으며 그들의 이면을 낱낱이 보여 준다.

결국에는 그저 음식뿐?

스티븐 풀이 바라는 음식의 풍경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한 세기 전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길버트의 글을 인용하며 나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우리 시대의 광적인 푸디즘을 가장 지혜롭게 바로잡으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한 세기 전 W. S. 길버트가 남긴 격언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식탁 위에 무엇이 올라오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의자 위에 누가 앉는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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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전문기자/문화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