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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인문학] 값싼 음식의 가격표에 가려진 자연·사람·문화의 값비싼 희생

값싼 음식의 실제 가격, 저자 마이클 캐롤런

모든 식품 체계의 목표는 예측 가능한 미래에 인류를 먹여 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저가 식품 체계는 이러한 목표를 성취할 의지가 없다. 그럴 능력 또한 없다.

저가 식품, 인류를 먹여 살릴 임무를 부여받다

콜로라도 주립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마이클 캐롤런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농업 정책, 환경, 식품 체계에 대해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일반 독자들을 위한 관련 서적들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

'값싼 음식의 실제 가격'은 우리가 싼값에 음식을 소비할 수 있는 이유가 현행 식품 체계의 비정상성에 있음을 밝힌다.

값싼 음식의 가격표 뒤에 가려져 있는 개인과 집단의 희생을 되짚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인류의 더 나은 미래와 상생의 길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2003년 9월 10일, 전 세계 농민들이 모인 세계 무역 기구WTO 회의장 앞 시위 현장에서 한국의 농민 이경해는 WTO의 농업 정책을 비판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들고 있던 팸플릿에는 'WTO가 농민을 죽인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덤핑, 급증하는 수입 농작물, 정부 예산의 부족' 등의 문제로 무너져 버린 농민들의 생활과 '국제 곡물 가격이 매우 낮음에도 많은 저개발 국가들에 기아가 만연'한 현실을 고발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캐롤런은 이 사건이 저가 식품 체계에 만연한 불합리성과 그것로부터 예상할 수 있는 비극적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말한다.

첨예한 찬반 대립 속에서도 저가 식품 체계는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무엇이고 어떻게 주류로 받아들여졌을까?

그들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싼값에 음식을 소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즉 대량 생산과 효율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세계 식량 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노동 집약적이고 비효율적인 전통적 소규모 농업은 전 인류를 먹여 살리기에는 발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농업 기술과 정부의 지원 등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고, 이를 통해 증가하는 비농업 인구를 먹여 살리고 생산 이익을 도시에 재분배하는 등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싼값에 대량 생산된 음식의 불편한 진실

이론을 현실에 적용되었을 때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캐롤런은 결과적으로 저가 음식 체계는 실패한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경제 개발의 수단으로서 성공을 거둔 적이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국제 분쟁, 기아, 비만, 환경과 문화 파괴 등 다양한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키웠고, 몇몇 사례는 그야말로 재앙의 수준이었다고 일갈한다. 저가 식품 체계가 가진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과 구조적 모순을 살펴보자.

식량 안보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대부분의 개발 도상국, 그중에서도 농촌 지역의 빈곤이다.

개발주의자들은 세계 소농들의 생산성 증대를 통해 이러한 지역 불균형의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방안으로 녹색 혁명을 제안했다. 녹색 혁명은 품종 개량이나 유전자 조작과 같은 기술 개발과 전통적인 농업 방식에서 벗어난 산업화된 생산 방식을 통해 효율성의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효율성만을 강조한 정책은 산업화에 부적절한 농작물의 생산량 하락,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토양 오염과 수확량 감소, 연료 사용 증가로 인한 환경 파괴 등으로 이어졌다.

캐롤런은 이러한 부정적 영향이 미국과 같은 나라의 소규모 가족 농장들이 아닌 개발 도상국의 수백만 농민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녹생 혁명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서는 지난 20년간 빈곤층 인구가 두 배로 증가하여 3억 명에 이르렀고, 이는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40%를 넘는 수치다.

캐롤런은 자유 무역 시스템의 불공정성 또한 지적한다.

녹색 혁명이라는 미명의 동일한 출발선에서 전 세계의 농민들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한다는 자유 무역은 근본적으로 선진국에 유리한 조건일 수밖에 없다.

국가 지원이라는 측면을 예로 들어 보자.

선진국은 막대한 지원 아래 자국의 농업 분야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반면 국가 여력이 도시에 편향된 개발 도상국은 농업 분야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선진국은 농민 1인당 매년 6,000~10,000달러 규모의 보조를 받는 반면, 개도국 중 예를 들어 아프리카는 매년 1인당 10달러 미만의 지원만 있을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매일 10억 달러가 농업 지원에 사용된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선진국들에게 우선적으로 지출되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이 만든 상대적 불이익은 결국 개발 도상국의 농민들에게 돌아간다.

누구를 위한 저가 식품인가

저가 식품은 수백만의 영세 농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분쟁에 불을 지르고, 전 세계 상당한 지역의 발전을 지연시키고, 환경에 피해를 주고, 성공하는 누군가를 만들어 내는 만큼 수많은 실패자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들에도 불구하고 저가 식품 정책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캐롤런은 먼저 농업 분야의 국가 보조금이 어떤 형태로 지급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저가 식품 체계가 가진 구조적 문제를 파헤친다.

미국에는 220만 개의 농장과 3억 명 이상의 소비자가 있다. 반면 음식 가공업자와 제조업자는 고작 2만 5,000명, 식품 도매업체는 약 3만 2,500곳, 식품과 음료 소매업체는 약 11만 2,600개 정도에 불과하다.

1995~2009년 미국의 농업 보조금 중 88퍼센트의 금액이 전체 농업 관련 집단의 20퍼센트에 해당하는 농장에 집중됐다. 남은 80%에 해당하는 176만 개의 농장들이 잉여 보조금을 나눠 지급받았고, 그 금액은 245억 달러 정도였다. 1999~2009년 상위 세 개의 보조금 수혜자들이 총 10억 달러 이상의 원조를 받은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불균형이다. 이러한 시장 집중화 현상은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등 다른 농업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든든한 정책적 지원을 받을 곳은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부를 거머쥔 집단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식품 유통 과정에서 중간 단계에 있는 소수 대기업들은 독점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농업 생산 비용에 비해 실제 식품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아지면서 대다수 중간 규모 생산자들이 어떠한 이익도 보지 못한 2007년 식량 위기 기간에도 거대 식품 회사 3사의 수익 증가율은 36%, 67%, 49%에 달했다. 위기가 가장 심각했던 2008년에도 거대 3사의 순이익은 각각 86%, 55%, 189%나 증가했다.

캐롤런은 이러한 수요 독점 현상을 통해 농민들로부터 상품을 구매해 소비자들에게 되파는 식품 생산업체들이 시장에 대한 강력한 지배권을 가지게 됐다고 말한다. 시장 집중화 상황에서 농민 생산자들은 구매자가 정한 금액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값싼 음식의 숨은 비용이 다양한 형태로 농민들에게 돌아가고 있지만 실제로 이득을 보는 거대 이윤 집단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비정상성은 유지될 수밖에 없다.

먹거리 앞의 평등

캐롤런의 주장은 단호하다.

저가 식품 체계는 실패다.

저가 식품 체계하에서는 소농부터 개도국의 빈곤층, 환경, 미래 세대에 이르기까지, 손해를 보는 주체가 너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영양 결핍에 시달리고 농민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보장받지 못하는데, 이는 대개 우리가 저가 식품 세상에 홀려 있는 탓이지, 저가 식품 체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아니다.

현행 식품 체계의 실패를 통해 도출해 낼 수 있는 결론은 우리가 앞으로 적정 가격의 식품을, 정당한 식품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녹색 혁명과 같은 하나의 거대 논리와 구조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다.

캐롤런이 생각하는 진정한 적정 가격 식품 체계는 규모, 범위, 생산 기법 등이 상이한 현실에서 다양한 형태의 식품 체계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가능하다. 직거래 장터, 지역 사회의 농업 지원, 커뮤니티 가든과 같은 새로운 농업 생산 구조의 확대와, 기형적 구조를 유지시키는 행정적 지원이 아닌 식량 불안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을 위한 보조금, 생산자 보조금 등 정책적 보호 또한 절실하다.

2050년에는 농업이 먹여 살릴 전 세계 인구가 90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구 성장이 일어나는 곳은 가뜩이나 심각한 식량 불안에 시달리는 개도국들에 집중될 것이다.

세계 작물 생산량의 증가폭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세는 개발 도상국에서 더욱 느리게 진행될 것이다. 인간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농업 체계가 무너지면 우리는 희망적인 미래를 약속할 수 없다.

이것은 비단 농민들만의 몫이 아니다. 식품 체계의 붕괴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치명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재앙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일상에서 소비하는 식품의 실체를 인식하고 무너진 균형을 바로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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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전문기자/문화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