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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인문학] 음식은 어떻게 문명의 흥망성쇠를 지배해왔는가

음식의 제국, 저자 에번 D. G. 프레이저, 앤드루 리마스

“메콩삼각주 새우잡이 배가 빈 그물을 끌어올리면 왜 카리브해에서 식량폭동이 일어나는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국가 탄생부터 현대 중국의 싼샤댐 건설까지, ‘음식’을 프리즘으로 인류 문명사를 새롭게 펼쳐 보이는 어느 농경학자의 타임슬립

'음식의 제국(Empires of Food)'은 16세기 피렌체 상인이자, 세계 무역 여행을 기록한 최초의 유럽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의 15년에 걸친 세계 일주를 따라간다.

이는 인류가 땅에서 기르고 사냥하고 교역해온 ‘먹을거리’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1만 3000년간 음식이 인간의 운명을 지배해온 과정을 생생하게 서술한 연대기다. 그리고 머지않아 닥칠 의미심장한 미래에 대한 충격적인 통찰이다.

도시, 문화, 예술, 정부, 종교 등 우리가 이른바 문명이라고 일컫는 것은 다름 아닌 ‘잉여 식품의 생산과 교환’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졌다.

미국의 저명한 농경학자 에번 프레이저는 저널리스트 앤드루 리마스와 함께, ‘음식이 지배하는 제국의 노예’로 살아온 것이나 진배없는 인류의 문명사를 흥미진진한 타임슬립을 통해 새롭게 되살린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 근대 대영제국, 현대 미국과 중국의 몸살 앓는 곡창지대를 드나드는가 하면 향신료 가득 실은 대형 범선, 거대한 곡물저장탑, 플랜테이션 농장을 넘나든다. 그러면서 시종일관 음식이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짚어보고, 하나의 문화나 나라에 식량이 떨어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들려준다. 그리고 굶주린 세상의 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인류의 흥망성쇠가 반복되는 가운데 19세기 파멸적 식민지 정책은 세계의 절반을 빈곤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 후유증은 결코 회복되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놀라운 농업 생산성과 유전자변형 작물의 이 시대에도 우리는 다시 한 번 식량 위기를 겪고 있다.

음식의 제국은 기후 변화, 연료비 상승, 한계에 다다른 농경지 등의 문제에 취약한 21세기 ‘음식의 제국’을 진단한다.

과거처럼 우리도 기근과 불안을 향하여 위태롭게 달리면서 언제까지나 풍족할 것이라는 망상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재난을 피할 지혜와 방법을 찾을 것인가?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다”

에번 프레이저와 앤드루 리마스의 논지는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음식은 단순히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단위가 아니다. 음식은 경제적이고, 정치적이며, 사회적이고, 미학적인 매체이다.

따라서 음식은 문명의 뼈대가 되는 필요충분조건으로서 모자람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들은 “음식에 관한 연구는 어쩌면 인문학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음식을 중심으로 한 문명사의 재정립을 통해 저자들이 궁극적으로 해갈하고자 하는 문제는, 현재의 식량난이다.

식량난의 역사는 유구한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며 되풀이되어왔다. 문명의 시작에 음식이 있었고, 문명의 끝에 음식이 없었다.

에번 프레이저와 앤드루 리마스는 현재 전 세계 식량난이 일촉즉발의 상황임을 경고하며, 막강한 식품 강대국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중국을 그 화두로 제시한다. 고대 이집트부터 현대 중국에 이르는 모든 문명의 기둥은 ‘잉여식품, 잉여식품의 보관·운송, 잉여식품의 교환’이었다.

막대한 토양침식과 환경 파괴, 화석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건설된 현대판 만신전 ‘싼샤댐’. 전례 없는 천문학적 비용을 감수하며 구축된 댐의 존재 이유는 식품 교역에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싼샤댐의 특성은 문명의 기둥을 무너뜨린다. 잉여식품의 생산, 그 자체를 위협한다는 말이다. 잉여식품의 생산과 원만한 교역 없이 문명은, 인류의 내일은 없다.

그렇다면 인류 쇠망의 보편 법칙은 무엇일까.

박진감 넘치는 여정을 함께하는 동안 그것은 풍족한 오늘의 식탁을 맹목적으로 낙관하는 데 기인함을 알 수 있다.

지구의 토양이 비옥하다는 낙관

지난 80년 동안 인류는 전례 없는 맹위로 땅을 경작해왔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어느 때보다 방대한 수확량을 자랑하는 현재, 인류는 ‘자연자산’을 모두 끌어내어 지력을 고갈하고 있다. 병들고 기운 없는 땅에서 어떠한 생산물을 기대할 수 없을 때 성마른 인심은 국가와 문명을 공격한다. 이러한 현실을 개탄하며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일갈한다. “부식토가 사라져 조상의 뼈로 거름을 만들 도리밖에 없을 때 국가로부터 기대할 것은 없다.”

앞으로의 기후가 온화할 것이라는 낙관

누구나 온화한 날씨가 계속될 거라는 일기예보를 기대한다.

실제로 현재 인류는 온화한 날씨를 여러 세대에 걸쳐 누려왔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오히려 특수한 시절이 작금이다. 지구의 기후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고대 로마와 중세의 ‘음식의 제국’은 악천후 속에서 몰락했다. 기후가 건조해지며 나타난 연이은 가뭄이 민감한 토양을 괴롭히고, 계속된 비는 병충해와 전염병을 일으켜 땅과 인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단일작물 재배와 특성화에 대한 낙관

21세기 ‘음식의 제국’은 단일작물 재배를 거의 불문율로 한다.

이는 경제적으로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생태적으로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다. 단일재배는 가뭄과 홍수, 해충의 공격에 치명적이다. 실례로 16세기 스페인 모험가들이 퍼트린 플랜테이션과 대농장은, 식물군의 다양성 없이 단일작물만을 길렀기 때문에 사실상 사상누각이었다. 아일랜드 대기근 역시 마찬가지다. 단일작물 재배는 토양의 유기물을 없애고 습기를 말리는 결과를 가져와 문명을 파국으로 치닫게 했다.

값싼 화석연료가 영구히 제공될 것이라는 낙관

인류는 자연에서 오는 화석연료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화석연료가 합리적인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식료품의 안정적 보관 역시 불가하다. 값싼 에너지는 식료품 공급에 중추 역할을 해왔다. 저자들은 새의 배설물이자 놀라운 화석연료인 구아노를 차지하기 위한 19세기의 거대한 전쟁과, 윤작의 비밀병기라 할 수 있는 ‘질소’ 고정을 향한 인류의 시행착오를 상세히 소개한다.

‘금융 위기는 삶을 망치치만 식량 위기는 삶을 끝장낸다’는 불편한 진실.

식량난의 역사는 농민봉기, 민중반란, 정권교체, 국가 간의 전쟁 등 전 세계적 파국을 초래하며 문명의 존폐를 위협해왔다.

이는 먼 역사의 사건이 아니다.

1994년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농민들의 분노로 피어난 농민봉기, 1917년 미국에서 터무니없이 오른 장바구니 물가에 분노해 상인들을 습격한 어머니들의 반란 등의 사건은 가까운 과거의 일이다.

그렇다면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음식의 제국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지속가능한 농업’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의 실례는 멀지 않다.

에번 프레이저는 자기 할아버지의 농업 방식을 예로 들어, 문명을 되살리는 농업이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강조한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첫째, 다년생 작물을 심는 것으로 자연 상태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둘째, 기계 대신 사람의 근력을 사용하여 한정된 석유자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셋째는, 바로 생산물의 지역 판매이다.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교역로의 거리를 줄이고 잉여식량을 늘리는 것은 사회적 혁명을 요구하는 일이자 18세기 ‘빵관리법’의 역설, 곧 일용할 빵은 경제 논리의 대상이 아니라는 식품의 공익성을 지지하는 일이다.

식품의 공익성에 대한 성찰은 왜곡된 식품 교역 시장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며, 자연히 윤리적 교역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1946년 본격적인 공정무역 운동을 탄생시켰다.

자연적 온전함을 표방하는 유기농 식품의 활성화, 베네치아의 ‘슬로푸드’ 문화는 지역 생태 환경에 기반을 둔 코뮌을 필요로 한다.

건전한 식품 생산과 교역의 이상향 역시 물리적으로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생태공동체이다.

지속가능한 음식의 제국이 존속하기 위한 조건은 첫째, 작고 다양성 있는 농장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둘째, 식품을 공급받는 소비자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생물지역주의’라고 한다.

왜곡된 글로벌 경제시장에 대항한 생물지역주의는 원초적이고 순수한 형태의 소비를 퇴색시키지 않는 보루이자, 머지않은 애그플레이션과 식량난의 재앙에서 벗어나는 단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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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전문기자/문화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