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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인문학] 한국 음식의 뿌리를 찾다

음식 고전 , 저자 한복려 한복진 이소영

우리 고조리서 중에서 가장 오래된 책은 1450년 편찬된 '산가요록'이다. 2000년까지만 해도 이 자리는 '수운잡방'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2001년 청계천 고서점 폐지 더미에서 '산가요록'이 발견되며 고조리서의 역사가 다시 쓰였다.

평생에 걸쳐 우리 음식을 연구해온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 한복진 전주대 교수 자매와 궁중음식연구원 연구실장 이소영 교수는 우리 식문화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만 난무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한식의 뿌리 찾기에 나섰다. '음식 고전'의 저자들은 '산가요록'을 시작으로 14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의 고조리서 중 식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37권의 책을 선별하여 연대순으로 정리했다.

옛 책에서 발굴한 한식 상차림의 기원

한국인이 매일 먹는 ‘기본 밥상’에는 밥과 갖가지 반찬, 찌개, 김치가 올라온다.

그러나 우리 음식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밥과 찬으로 구성된 식사를 했으며, 지금 즐겨 먹는 요리들은 언제 만들어진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면 옛 책을 넘나들며 행간을 파헤치는 수밖에 없다.

평생에 걸쳐 우리 음식을 연구해온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 한복진 전주대 교수 자매와 궁중음식연구원 연구실장 이소영 교수는 우리 식문화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만 난무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한식의 뿌리 찾기에 나섰다.

몇백 권의 책을 뒤져 음식과 조리에 대한 기록을 찾아 그 내용을 토대로 식문화의 거대한 뿌리 찾기를 몇십 년. 그 사이 국내 최고(最古) 조리서가 '수운잡방'에서 '산가요록'으로 바뀌었으며, 부녀자가 쓴 최초의 한글 조리서 또한 '음식디미방'에서 '최씨음식법'으로 바뀌었다.

꾸준히 옛 책을 찾는 노력 끝에 어렵사리 손에 넣은 책도 생겼고, 제목만 알려지고 조리법이 오리무중이던 요리를 생생하게 재현하기도 했다. 우리 음식에 대한 모든 것을 담은 '음식 고전'은 한국 음식사의 거시적인 흐름을 알려주는 식문화 교양서이자, 109가지 조리법을 실은 한식 교과서이다.

500년 역사의 온반, 1900년대에 생긴 신생 요리 ‘당면 넣은 잡채’,

옛 책을 흔히 고서(古書)라 부른다.

이 책에는 고서가 아닌 ‘고조리서(古調理書)’라는 생소한 단어가 등장한다. 옛 책은 지금과 달리 분야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 많았다.

특히 식품과 조리, 음식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농서나 의서, 종합 백과사전 등에 산발적으로 기록되곤 했다. 따라서 식문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고서 중에서 식품이나 조리에 대해 기술한 책을 따로 ‘고조리서’라 칭하며 일반서와 구분해왔다.

음식사는 일상생활과 맞닿아 있는 만큼 변화의 폭이 역동적이며 잔가지 또한 다양하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추가 처음 등장한 때가 임진왜란 즈음이란 것을 안다. 그러나 식문화에 대한 지식은 거기서 끝이다.

고구마, 옥수수 또한 외래 작물이라는 점, 음식점에서 흔히 만나는 ‘온반’이 1554년 책에 이미 나와 있다는 점, 요즘의 맛집 블로그처럼 식도락 기행을 모은 책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이런 ‘잡학’은 꼭 필요하진 않지만 알아두면 유용한 지식이자 묵직한 이 책의 양념 역할을 한다. '음식 고전'은 거시적인 흐름을 다루다 보면 놓치기 쉬운 ‘양념’, 즉 ‘잔재미’와 ‘읽는 맛이 있는 잡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도서의 흐름과 관련 있는 단편적인 지식,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는 따로 박스로 묶었으며, 세세한 도판까지 실어 생동감을 더했다.

간과하기 쉬운 근대 조리서까지 다룬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고 45년 동안 쇄를 바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며 한국 요리책의 역사를 새롭게 쓴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 ‘미원’으로 잘 알려진 일본 조미료 회사 ‘아지노모토’에서 조미료를 판매하기 위해 만든 '사계의 조선요리', 근대화된 ‘여학교’의 조리 실습을 위한 '우리음식', '할팽연구' 등, 비교적 ‘요즘’ 책이라는 이유로 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요리책의 면면까지 꼼꼼하게 살핀다.

이런 책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일제강점기를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우리 음식이라는 ‘문화유산’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선조들의 마음이 생생하게 읽힌다.

쿡방이 흘러 넘치는 시대 …숭어만두·가마보곶·열구자탕·구절판 맛을 보다

옛 책의 요리를 재현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근대 이전의 책은 음식 설명이 불확실하고 조리법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은 게 많다. 지금처럼 재료 및 분량을 나열하고 번호를 매겨 조리법을 정리한 것이 1930년대부터이니, 그 이전의 책들은 대부분 중구난방으로 쓰였다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우리 식문화를 통합적으로 정리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요리들을 재현해왔다. 그 와중에 이름만 알고 조리법은 몰랐던 요리를 새롭게 발견한 책에서 찾아내기도 하고, 같은 음식의 연대별, 지역별 차이까지 알아내기도 했다.

'음식 고전'을 본격적으로 집필한 것은 1년 남짓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준비에는 저자들의 전 인생이 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리를 처음 배우던 날부터 차근차근 정리해오던 우리 식문화 지식이 최종적으로 열매 맺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방대한 분량과 재현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 누구도 감히 엄두내지 못했던 일을, 한복려, 한복선, 이소영 선생이 힘을 합쳐 우리 음식을 공부하고 전승한다는 자의 사명감으로 끝까지 정리해냈다.

‘맛집 탐방’이 블로그를 점령하고 ‘쿡방’이 흘러넘치는 시대, 이 책은 거대한 우리 음식의 역사적 뿌리를 굳건히 다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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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전문기자/문화경영학 박사